증거는 필요 없네. 이것은 내 마지막 배려일세. 내가 나머지 마라왕을 처치한 후에도 병이 낫지 않은 자는 모조리 도려내겠네.”

“마라왕을 처치하신다고 했습니까?”

“놈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네. 그들이 백룡장과 결탁했음을 내 증명하지. 다녀옴세.”

도단경은 자신의 말을 마치고 소리도 없이 돌아갔다.

분위기는 더 무거워졌다.

사마오가 한숨을 쉬곤 자기가 때려 부상을 입힌 중년의 여 군사에게 물었다.

“몸은 좀 괜찮은가?”

“고맙다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자네는 싫든 좋든 백룡회주와 연을 맺었던 사람일세. 맹주가 알았다면 자네도 무사치 못했을 거야.”

섬서에서 화산파를 담당했던 군사, 손현이 입가의 피를 닦으며 일어났다.

“저도 그만두겠습니다. 죽이려면 죽이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수리하겠네. 그리고, 이곳에 더 있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떠나도 좋네.”

군사의 태반이 머리에 쓴 유건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나둘 군사당을 떠나기 시작했다.

손현은 죽은 군사의 곁으로 가서 그의 눈을 감겨 주며 사마오에게 물었다.

“맹주는 잘못됐습니다. 당주는 그걸 알면서도 맹에 남아 있을 생각입니까?”

“그렇다면 백룡회주는 옳은가?”

“네. 방식도 이상하고 행동도 괴짜지만, 그는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남의 고통에 슬퍼할 줄 압니다.”

“만일 자네 생각이 잘못됐다면? 만에 하나. 맹주가 맞고 백룡회주가 틀렸다면?”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는 걸세.”

사마오가 손현에게 내상 약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 만에 하나를 위해 누군가는 맹주의 곁에 있어야 하네. 맹주가 맞는다면, 수습해야 할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

손현은 사마오에게 고개를 숙이곤 그를 지나쳐 문으로 갔다.

뚫린 창호지의 구멍을 매만졌다.

기분이 묘했다.

나찰선자 임옥운은 늘 자기 기분을 못 이겨 이 창호문을 뚫었다가, 금세 와서 새로 붙이곤 했었다.

그런데 맹주는 그대로 떠나 버렸고, 구멍은 이제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마치 무림맹의 현실을 말하는 듯했다.

그날, 군사당의 군사 팔 할이 맹을 떠났다.

* * *

마라삼왕 중 사마와 삼독자, 색정자, 육진자는 놀랍게도 무림맹에서 멀지 않은 산 중에 자리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강서로 간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군.”

“천마의 계승자에게 당했을까?”

“흐음,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야. 일단 신주를 파괴하지.”

“슬슬 무림맹으로 갈 때가 됐군.”

그때, 그들은 뭔가를 느꼈다.

바스락.

가깝지는 않으나 산 주위에 온통 부산한 기가 감돌았다.

육진자가 가만히 바닥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포위됐군. 기운을 보니 일전의 그놈들이다.”

“흐흐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놈들. 이번에야말로 죽여야겠구나.”

한데 네 마라왕은 돌연 광폭하고 거대한 기운을 느끼고 위를 쳐다봤다.

삼나무 꼭대기에서 누군가 아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찾았구나. 쥐새끼들.”

색정자가 위를 쳐다보더니 반색했다.

“호오. 오랜만이군, 맹주. 아직도 살아 있었나.”

무림맹주 도단경이 음산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네놈들이 본 맹주의 대업을 방해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크흐흐, 우리가 뭘 방해했다는 게냐. 사실 이제부터 방해할 예정이긴 했지.”

육진자도 위를 보고 말했다.

“신주를 파괴해서 다시는 천마신공의 계승자가 나타나지 못하게 해 주마. 중원이 우리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사마가 숨을 훅훅 뿜어내며 말했다.

“그 전에 신주의 파수꾼인 네놈부터 죽여야겠…….”

사마가 말을 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놈…… 은 왜 그 모양이 되었느냐?”

순간 도단경이 벼락처럼 뛰어내렸다.

콰앙!

그가 손날을 휘두르자 십 장에 이르는 땅이 갈라졌다.

네 마라왕이 좌우로 흩어졌다가 즉시 협공했다.

가장 앞에 선 건 사마였다. 사마는 특유의 각진 도로 도풍을 일으키며 도단경을 공격해 갔다.

동시에 향을 사르는 냄새를 풍기며 주문을 외웠다.

도단경은 사마가 근처에 오기도 전에 장을 뻗었다.

봉마아뢰야식 전란.

콰아앙!

그의 앞이 부채꼴로 터져 나갔다. 롤배팅 이형환위로 도단경의 좌측으로 이동해 도기를 뿌렸다.

부웅…….

도기가 도단경이 남긴 잔상을 수백 개로 쪼갰다. 도단경은 사마의 머리 위에서 아래로 장을 날렸다.

콰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