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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3-10-1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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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 후작은 끔찍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클라드와 마주했다가 다시 착잡한 심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시선에 클라드가 웃음을 흘렸다.

“대답 고맙네.”

“누가 전하의 고통을 이해하겠습니까. 다만 저처럼 전하를 여전히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건 잊지 마십시오.”

클라드는 레브 후작의 간절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비틀비틀 걸어 가장 어두운 곳에 위치한 침대에 몸을 누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밤새 잠을 못 잤으니 지금은 클라드가 유일하게 눈이라도 감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가는 길에 내 아홉 번째 부인에게 전해. 지금 돌아가는 게 유일한 살길이라고. 남편으로서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라고.”

“전하.”

“어차피 또 저 혼자 죽거나 도망갈 여자야. 뭣 하러 내 집에 외부인을 들여.”

클라드가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돌아누웠다.

그늘에 잠긴 금발이 하얀 베개에 부드럽게 흩어졌다.

“내가 뭣 하러 또 누군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아야 하냐고.”

여전히 벽만 보는 금색의 뒤통수에서 혼잣말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긋지긋하다고 그런 거.”

***

모산 레브 후작은 착잡한 걸음으로 저택을 나섰다.

입구에 출입을 허락받지 못한 마차 한 대가 외로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털 귀마개와 얇은 털 망토를 걸쳐 입은 작은 소녀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차분하게 내린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빨갛게 얼은 얼굴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세나 얼굴선은 성숙했지만 통통한 양 뺨이며 빽빽하게 늘어진 속눈썹 아래 축 처진 눈꼬리는 아직 앳된 티가 물씬 났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군.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위대한 유프리스에 무구한 영광 있으라.”

폐황자라 할지라도 클라드는 명실상부한 황실의 적통.

레브 후작은 그 부인인 폐황자비의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조아렸다 들었다.

“모산 레브입니다. 레브 후작이라 불러주십시오.”

레브.

돌아가신 선황후 폐하의 성이다.

유안은 주워 읽었던 신문에서 봤던 이름을 머릿속으로 더듬었다.

레브라면 이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가문 중 한 곳이었다.

정의롭고 청렴결백한 귀족 중의 귀족.

초대 황제를 도와 이 나라의 시작을 연 개국공신.

수백 년 이어진 유프리스 역사 속 여러 황후를 배출한 명문 중의 명문.

누군가에게 전서구를 받은 콤판니 후작이 그녀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이 나올 것이라 이른 뒤 급하게 훌쩍 떠나버린 참이다.

그리고 한참이나 지나서 나온 사람이 집사도 아니고 무려 폐황자의 외숙부라니.

레브 가문의 가주라니.

유안은 긴장한 얼굴로 레브 후작의 어깨너머,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검은 저택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드디어 보는 것이다.

루이즈의 마지막을 지켜봤을 남자를.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던 루이즈의 죽음에 관해 묻고 싶은 사람이 저곳에 있다.

그리고 이제 유일한 가족이 된 사람이기도 했다.

“저…… 이제 들어가는 건가요?”

“죄송합니다만, 전하. 우선 친정에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문전박대에 유안은 잠시 숨을 참았다.

죄송. 친정. 돌아가.

세 가지 단어를 머리와 입 안에서 굴려보다가 겨우 숨을 뱉었다.

“어째서요?”

돌아가라니? 어디로 돌아가란 말인가?

새카만 눈이 세차게 흔들리자 레브 후작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펠리에세에서 따로 시종이나 시녀를 붙여주지 않은 것을 확인한 그는 잠깐 당황했지만 곧 평정을 찾았다.

애초에 귀한 딸을 이곳에 보낼 부모는 없었기 때문이다.

착잡한 심정이 무게를 더해갔다.

“세간에 클라드 전하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도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괴물도 호색한도 아닌 그저 아픈 환자일 뿐이십니다. 반려를 맞이하기에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시니 황실에서 따로 말씀이 있으실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게 더 현명하실 듯싶습니다.”

후작은 자신이 한마디 한마디를 이을수록 점점 더 안색이 어두워지는 여자를 보았다.

보통은 반대다.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모두 기다렸다는 듯 행렬을 이끌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여자는 아직 클라드를 보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겁에 질려 있었으며 곧 쓰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제가 싫다고 하면요?”

하지만 한참을 흔들리다 나온 목소리는 제법 단단했다.

빨갛게 언 손을 마주 잡고 덜덜 떨면서 여자가 확실히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다.

“저는 돌아가지 않아요. 여기 있을 거예요.”

생전 처음 보는 반응에 레브 후작은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 입만 벙긋거렸다.

여자는 그에게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으려는 듯 급하게 말을 이었다.

“결혼식을 올린 건 아니지만, 이미 황실에서 저를 다음 신부로 지목했다 들었어요. 그럼 저 까만…… 저 저택은 제가 들어가도 되는 곳 아닌가요? 이제 저기가 제집이 되는 게 아닌가요?”

여자의 말은 맞는 말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검은 저택의 주인이 클라드 유프리스라는 점이다.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모산 레브 후작은 이 순진하고 겁 많아 보이는 아가씨가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분…… 그러니까 제 남편께서 직접 나오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유안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굳게 닫았다. 귀 밑의 작은 턱뼈가 꿀렁이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레브 후작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애써 모른 체하고 고집스럽게 정면만 보았다.

어차피 돌아가면 죽도록 아프거나 죽고 싶을 만큼 아프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어디든 그 지옥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곳이 남편에게 문전박대 당한 채 서 있는 낯선 저택 앞일지라도.

짐짓 절박해 보이는 유안의 모습에 모산 레브 후작은 곤란한 얼굴로 저택 현관 입구를 향해 손짓했다.

시종 한 명이 멀리서부터 그들에게 달려왔다.

모산 레브 후작은 유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클라드를 불러달라 전했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마차를 몰고 오라 다른 시종에게 일렀다.

새로운 폐황자비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는 순진한 아가씨의 고집스러운 여정에 함께해줄 마음은 없었다.

유안 펠리에세라는 아홉 번째 신부 역시 클라드가 무서워 도망갈 것이고 황실은 곧 클라드의 열 번째 신부를 찾아 보낼 테니까.

클라드가 직접 나와 얼굴이라도 보여주면 스타베팅 벗겨질 만큼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고 말 테지.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레브 후작은 유약해 보이는 새신부에게 가벼운 연민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유안은 그가 예를 취하고 물러나는 것을 끝까지 모른 체했다.

다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녀를 데려갈 다른 누군가가 이 저택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

“뭘 그렇게 기다리고 섰어? 정신 사나우니까 이제 좀 앉아.”

“며칠이 지나도 분이 안 풀리는 걸 어떡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나가서 연락 한 통 없는데. 이게 무슨 집안 망신이냐고요!”

“어련히 알아서 돌아올까. 이번에는 절대 그냥 안 넘어가. 눈밭에 무릎을 꿇려놓고 관절이 꽁꽁 얼어서 제 발로 못 걸을 때까지 족쳐놓아야 다시는 도망갈 생각을 않지. 거기가 어디라고 따라가, 따라가긴.”

“그, 그렇겠죠? 그 약해 빠진 계집애가 무섭다고 중간에 마차를 돌려 다시 달려오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런다고 쉽게 용서해줄까 봐!”

펠리에세 백작은 백작 부인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응접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툭툭 떨었다.

벌써 며칠째 이 상태였다.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아주 개망신을 시키고야 만 유안의 도망에 처음에는 온 가족이 분노했다.

콤판니 후작의 사병이 온 집안을 헤집었는데 마땅히 항의할 수 없어서 치욕적이었다.

게다가 늘 순종적으로 굴던 유안이 처음으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제 할 말 다 하고 나가버렸기에 펠리에세 백작가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하다며 웃는 레지나와 일단 부모님이 화를 내니 같이 화를 냈지만 레지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프레데릭과는 달리.

유안의 도움으로 여태껏 집안일을 처리하던 펠리에세 백작 부부는 나흘이 지나고도 연락 한 통 없는 조카의 행태에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 내가 다 저 좋으라고 했지. 안 그래? 록센하르트가 어디라고. 거기 그 검은 저택이 어디라고! 거긴 겨울도 길고 바로 옆에는 사막이야. 가난하고 외진 영지에 그 괴물 폐황자의 신부가 돼서 저가 어찌 살려고? 지 언니가 거기로 간 걸 행운으로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뭐가 어쩌고 어째?”

펠리에세 백작은 곱을수록 열이 뻗쳐 얼굴에 부채질을 시작했다.

볼품없는 계집애 하나 떠났다고 저리 열을 낼 일인가 싶어 심드렁하던 프레데릭이 곧 눈치 없이 지껄이기 시작했다.

“폐황자도 황족은 황족인데. 황실과 가족이 되면 우리도 줄을 더 잘 서서 출세할 수 있지 않나. 어쨌든 그 록센하르트인지 뭔지 하는 영지는 폐황자의 몫일 텐데 우리한테 뭔가 떼어줄 게 있을지도 모르고.”

프레데릭은 술창고에서 가져온 술을 병째로 들이켰다.

그에게 유안은 거슬리는 사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사촌의 결혼이 출세에 도움만 된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유안이랑 루이즈가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시집 보내버리면 좋지 뭘 그래요. 거슬리던 차에 잘됐구만. 그 계집애가 운이 좋으면 우리가 줄도 서고. 안 그래 레지나?”

펠리에세 백작은 차마 유안이 펠리에세의 능력을 가졌는데 그게 무슨 멍청한 말이냐고 소리치지도 못하고 침음을 삼켰다.

그 능력은 죽은 루이즈를 제외하곤 오로지 가주인 자신과 유안 둘만의 비밀이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유안의 부재로 황금을 바리바리 싸 들고 펠리에세로 오는 손님들의 방문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잠시 쉰다는 핑계로 방문객들을 막고 있지만 설마, 만에 하나라도 유안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들어오기로 예정되었던 투자금과 몇 년 전부터 ‘특별’ 진료 예약을 잡고 기다리던 세력가들의 항의가 얼마만큼 들어올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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